2025. 11. 20. 10:53ㆍ사진의 역사
루이스 하인 – 카메라로 시대의 폭력을 기록한 사람
JK 사진이야기
루이스 하인(Lewis Hine, 1874~1940)의 사진은 언제 보아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의 사진은 아름다움을 노리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의 조형성에도 기대지 않는다.
대신, “보여서는 안 된 현실”을 드러내는 기록의 윤리가 중심에 있다.
사진이 미학적 대상이 되기 이전, 하나의 **사회적 문서(Social Document)**였던 시절의 사진이다.
하인은 미국 산업화의 이면에서 방치된 아이들을 끊임없이 기록했다.
당시 어린이 노동은 일상적인 관행이었다. 공장, 시장, 광산, 유리 공장, 술집, 신발가게 등
어린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거의 모든 장소에 아이들이 있었다.
그의 카메라는 그 아이들의 하루를 훔치지 않았다.
대신, 존엄을 되돌려 주는 시선이었다.
아이에게 말을 걸고, 이름을 묻고, 가족과의 관계까지 확인한 뒤 셔터를 눌렀다.
그는 사진을 “증거”라고 불렀고, 그의 사진은 아동노동금지법 제정에 실질적 영향을 주었다.
이 글은 그중 세 장의 사진을 중심으로,
당시의 역사와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함께 바라보려 한다.
그리고 최근 병실에서 내가 다시 카메라와 그림으로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 이유 또한
이 사진들을 통해 조금 더 선명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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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장의 밤 – ‘일해야만 하는 아이’의 자리

시장 한 귀퉁이, 커다란 나무 바구니 옆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
밤의 시장은 어른들에게도 긴장되는 공간인데,
그 아이는 장작더미처럼 쌓여 있는 농산물 사이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있다.
그의 시선은 손님을 향한 것도, 집을 향한 것도 아니다.
사진은 기다림과 체념 사이의 표정을 기록한다.
어린 시절의 놀이와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신 ‘노동’과 ‘수입’이라는 단어가 들어와 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지금 우리 동네에서 마주치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
새벽 배달을 나서는 청년들의 어깨와 어쩐지 겹쳐 보인다.
역사는 한 세기 넘게 흘렀지만,
노동의 구조적 취약성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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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방직공장의 소녀들 – 기계에 둘러싸인 시간

이 사진은 구조적으로 아름답다.
긴 기계 라인이 좌우로 뻗어 있고, 그 사이에 소녀들이 앉아 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이 가장 잔인하다.
정돈된 기계의 질서는 노동자의 불규칙한 숨결을 삼켜버린다.
하인은 방직공장 아이들의 손을 자주 클로즈업했다.
그 손은 아직 다 자라지 않아 기계를 멈추는 레버를 제대로 잡지도 못했다.
머리카락이 기계에 끼어 사고가 나는 일도 빈번했다.
사진 속 소녀들의 표정은 거의 비어 있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유지할 힘이 다 소모된 표정이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며,
이번 사고 이후 병실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두려움, 그리고 ‘몸이 가진 무게’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부터 몸을 혹사하며 살아온 아이들은 어떤 미래를 가질 수 있었을까.
지금의 배달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고령층 노동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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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유리 공장의 소년 – 위험을 배워야 했던 나이

뜨거운 열기, 부서지는 유리조각, 거대한 기계.
그 한가운데에서 열두 살 남짓의 소년이 앉아 있다.
손에는 작업 도구가 들려 있는데, 그 손은 마치 장난감을 쥔 것처럼 작다.
유리 공장은 당시 가장 위험한 노동 현장 중 하나였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긴 시간 일하다가
실명과 화상을 입는 어린 노동자도 많았다.
하인은 이 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기록했다.
> “이 아이는 늘 똑같은 자세로 일한다.
그 자세가 아이의 미래를 구부려 놓을 것처럼 보였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번 사고로 다친 다리와,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을 떠올렸다.
삶은 언제든 휘어질 수 있고,
몸은 언제든 균형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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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사진이 기록하는 것, 사진이 구해내는 것
루이스 하인의 사진은 단순한 고발 사진이 아니다.
그는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했다.
어린이들을 익명의 노동자로 남기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에게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살고 싶은 삶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기록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이 감각은 지금 나에게도 큰 울림이다.
이번 사고 이후 병실에서 네 편의 글을 연달아 쓰면서
나는 내 삶의 작은 조각들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불편함으로 시작된 감각이 어느 순간
감사로 바뀌어 가는 과정도 있었다.
하인의 카메라가 그러했듯,
나 역시 작지만 의미 있는 현실들을 기록하며
새로운 삶의 형태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진은 거창한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충분한 의지만 있다면,
겔럭시 울트라25의 펜 하나로도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하인의 사진은 바로 그 ‘의지의 힘’을 다시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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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오늘의 한국에 남은 질문 – 누가 기록할 것인가
지금 한국의 거리와 골목에도
하인의 사진 속 아이들과 비슷한 장면들이 있다.
폐지 줍는 노인,
새벽 배달을 뛰는 청년,
알바 두세 개를 이어가야 겨우 삶이 유지되는 사람들.
이 장면들은
하인의 시대만큼이나 기록될 필요가 있다.
그 장면을 기록할 사람은 누구인가?
사진가? 기자? 정부? 아니면 우리 자신?
나는 사고 이후,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드러내는 ‘증거’로서의 기록.
하인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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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마무리
루이스 하인의 사진은 ‘과거의 비극’이 아니다.
그의 사진은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의 구조, 빈곤의 재생산, 불평등의 연속성.
그리고 그 속에서 사라지지 말아야 할 한 사람의 존엄.
하인의 사진을 복원하고 되새기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기록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사진이 할 수 있는 일,
사진이 해야만 하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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